1 개요
이전 글에서는 각 주요한 계급론에 대해 리뷰했다.
이제 Wright (2000) 와 Standing (2014) 의 계급도식을 서로 이식시켜 볼 것이다. 키는 고용계약과 종속성을 구분하여 생각하기.
2 문제제기
그간의 계급론으로는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진입에 따른 근로형태의 변동을 적실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첫째, 신마르크스주의적 계급도식은 생산재와 더불어 숙련재, 조직재 개념을 통해 정교화된 도식을 제시하고 있으나(Wright, 2000), 고용관계를 넘어서는 변동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둘째, 비록 신베버주의적 계급도식을 통해 서비스 자본주의와 고용계약의 조응을 포착할 수 있더라도(Goldthorpe, 2007; Oesch, 2006), 이는 일단 고용된 노동자 내에서의 구분에 한정될 뿐, 여전히 고용계약을 넘어서는 계급적 충격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셋째, Standing (2014) 의 시도는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기 계급도식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 불안정성 수준의 위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고용형태를 계급논의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각 계급의 배치가 다소 자의적이고, 이로 인해 계급 간에 발생하는 착취, 통제, 배제 등의 계급상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서비스 경제로의 진입과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진입에 따른 형해된 고용관계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3 고찰: 고용관계와 종속성
반복하듯, ’고용관계’는 ’종속성’의 표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ILO (2023) 은 종속성을 지휘 권한(authority)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즉 어떠한 노무에 대하여, 노무의 제공자와 사용자 간에 통제권이나 자율성이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는 노무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데, 착취는 대가 지급의 방식이 고용계약을 통한 임금이든 도급계약을 통한 노무비든 상관없이 존재한다. 사용자의 경제적 이윤은 잉여가치의 전유로부터 비롯한다. 착취는 고용관계에 기반한 것이 아닌 종속성에 기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종속적 자영업자’가 대표적이다.
| 종속성 낮음 | 종속성 높음 | |
|---|---|---|
| 고용관계 O | 독립적 임금노동자 | 보통의 임금노동자 |
| 고용관계 X | 보통의 자영업자 | 종속적 자영업자 |
3.1 종속성과 숙련재는 반비례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독립적 임금노동자’도 가능할까? 물론 본질적으로 이들은 고용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착취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이들 집단의 독립성은 숙련재에 의해 어느 정도 보장된다. Oesch (2006) 가 도식화한 바와 같이, 고숙련 직종에는 다소의 독립성이 보장된다.
마르크스주의자의 언어로 환원하면, “숙련재의 소유 수준이 특정한 임게점을 지나는 수준으로 집적되면 업무방식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획득하게 된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사용자로부터의 업무지시나 통제로부터 자유로우며, 특정한 사업장에 얽매이지 않고 통용될 수 있는 종류·수준을 의미한다.
숙련재는 사용자의 지휘·감독 권한을 약화시켜 종속성을 완충하는 기능을 한다. Wright의 표현을 빌리면, 숙련재는 노동력 시장에서 ’전유 가능한 힘’을 제공하거나, 최소한 이 힘이 상실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수준의 숙련재를 보유하게 되면 생산관계 내에서 사용자와의 협상력이 크게 증대되기 때문에 사업장을 떠나 다른 사용자와 고용계약을 맺거나, 혹은 스스로 사업주가 되는 선택지를 갖게 된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특정한 임계점을 초과하는 숙련재는 생산재적 특징을 획득하게 되어 이른바 ’생산재적 숙련재’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이 생산재적 숙련재를 ’노동자의 숙련축적이 스스로의 생계활동에 있어서 사용자 의존성을 낮추어 결과적으로 자산으로 기능하기 시작하는 임계점’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3.2 고용관계는 조직재 측면에서 이득이 된다.
Standing (2014) 이 주목한 것은 고용관계 뿐만 아니라, 고용관계에서 얻어지는 사회소득을 포함한다. 고용보장, 일자리 수준의 보장, 산재보장, 견습기간에 대한 보장, 소득수준에 대한 보장, 노동의 정치적 대표성에 대한 보장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즉, 고용의 질이 높다면 고용관계가 노동자에게 가져다주는 이득이 상당하다. 만약 한국과 같이 기업단위로 노조가 이루어지는 경우, 고용의 질은 더욱 크게 작동한다. 이를 마르크스주의자의 언어로 환원하면, “조직재”가 된다. Wright (2000) 의 조직재는 복지국가와 조응하여 비로소 그 의미가 확장된다. 고용계약 자체가 이미 조직재가 되는 것이다. 노동관계법이 작동하며, 조직노동활동은 임금노동자에게 한정되고, 대개의 경우 사회보장법 또한 임금노동자에게 한정되며, 기업의 자체적인 사내복지제도 또한 조직재로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종속성은 유지한 채로 고용관계가 해체된 이들과의 구분점이 된다. 작업방식에서 상당한 수준의 통제가 존재하는 가운데, 고용관계로부터 해체된 이들은 상기 사회정책, 노동관계법, 조직노동으로부터 배제된다. 이는 Standing의 프레카리아트 개념과 일정 부분 일치한다.1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여, Wright 계급도식를 간소화한 뒤, ‘생산재적 조직재’ 개념과 ‘고용관계를 넘어서는 조직재’ 개념을 도입한 계급도식은 아래와 같다. 이 도식은 고용, 종속, 조직재, 숙련재가 결합하여 계급위치를 형성한다는 점을 시각화한 것이다. 핵심은 종속성과 조직재의 결합이 계급의 핵심축으로 이동했다는 점.
종속성과 고용관계가 동시에 발현되는 전통의 계급은 우측 하단으로 분류된다. 조직재를 전혀 보유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는 자영업자와 플랫폼 노동자들로 구성된다. 생산재적 숙련재를 보유하는 경우(숙련재: OO) 고용관계 및 조직재 수준에 따라 각각 자유 직업인, 고숙련 전문직, 공공행정과 관련된 전문직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 종속성 낮음 | 종속성 높음 | |
|---|---|---|
| 고용관계 X, 조직재 하 | 생산재 보유: 부르주아, 또는 숙련재 최상: 개업의, 개업 변호사 등 |
플랫폼 노동자 |
| 고용관계 O, 조직재 중 | 숙련재 최상: 교수, 의사 등 | 숙련재 높음: 숙련 노동자, 또는 숙련재 낮음: 프롤레타리아 |
| 고용관계 O, 조직재 상 | 숙련재 최상: 교수, 의사 등 | 숙련재 높음: 전문 경영인, 또는 숙련재 낮음: 관리자 |
이전에 워드프로세서로 도식을 만든 적이 있다. Quarto로 블로그에 표현하려니 표 기능이 한정적이어서 쉽지않다. 아래 그림을 참고하자.

4 결론 및 한계
종속성을 측정할 방법이 없다.
고용계약은 종속성의 대리지표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듯. 마치 IQ가 지능의 대리지표인 것처럼.
이 글의 내용으로 어디선가 논의한 적이 있는데, 이런 비판이 있었다.
계급은 단지 직업분류나 계약의 종류를 총집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자원 배분구조의 총체에 가깝다.
정당한 비판이라고 본다. 계급론이 직업이나 계약의 종류에 한정된다면, N잡러는 어떤 계급에 속한다고 해야할까? 대답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 이유가 위 비판의 정당성을 반증한다.
계급은 측정가능한 것이 아니다.
References
Footnotes
여기에 더하여, 국가에서 제공되는 권위를 조직에서 제공되는 권위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는 특히 사회정책 및 노동관계법에서 공공조직과 사적조직을 구분하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부문 고용은 연금 등 사회정책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고, 해당 노동자로 하여금 구분되는 생애적 특징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조직재를 소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