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비공개 연구노트를 공개 글로 다듬는 중인 초안이다. 문헌 확인이 끝나지 않았고, 논거와 표현이 바뀔 수 있다.
1 설계도는 훌륭한데 작동하지 않는 제도
정책 실패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설계도를 들여다본다. 급여 수준이 낮았나, 대상 선정이 잘못됐나, 전달체계가 부실했나. 그러나 어떤 제도는 설계도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는데도 겉돈다. 가입은 형식적이고, 수급은 불안정하며, 개혁 논의는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돈다.
제도주의(institutionalism)는 이 문제를 정합성(coherence)의 언어로 다룬다. 서로 상보성이 높은 제도들이 맞물리면 좋은 국가적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비교자본주의론(Varieties of Capitalism)이 대표적이다. 노동시장, 금융, 교육훈련, 기업지배구조가 서로 맞물릴 때 특정 성장체제와 복지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틀은 주로 제도와 제도의 관계만 본다. 제도의 성과를 설명하려면 그 제도가 놓인 사회구조, 그리고 걸어온 역사적 경로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2 정합성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다
정합성을 다음 세 차원으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 차원 | 핵심 질문 | 잘 설명하는 이론 |
|---|---|---|
| 제도–제도 정합성 | 다른 제도들과 기능적으로 맞물리는가? | 비교자본주의론, 제도적 상보성 |
| 제도–사회 정합성 | 실제 사회구조·규범·노동시장 현실과 맞는가? | 사회학적 제도주의 |
| 제도–역사 정합성 | 기존 정책 유산·경로의존과 충돌하지 않는가? | 역사적 제도주의 |
세 차원은 서로 분리된 변수가 아니다. 제도 효과가 만들어지는 서로 다른 층위다. 그리고 이것은 “셋 다 만족해야 한다”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어떤 제도는 역사적 정합성이 약해도 강한 정치연합이나 재정투입으로 유지되고, 사회적 정합성이 낮아도 행정적으로는 굴러간다.
핵심 명제는 이렇다.
세 정합성 중 하나라도 약하면 제도의 효과는 제한되고, 그 부정합은 집행 비용, 정치적 저항, 사각지대, 낮은 신뢰, 제도 간 충돌로 나타난다. 즉 세 정합성은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제도 성과를 약화시키는 서로 다른 실패 경로다.
3 국민연금: 세 차원이 모두 삐걱거리는 제도
이 틀이 잘 보이는 사례가 국민연금이다.
제도–제도 차원. 국민연금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안정적 임금노동, 소득 파악, 보험료 징수 행정, 퇴직연금, 기초연금과 맞물려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국민연금은 퇴직금, 기업복지, 직역연금, 자영업·비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과 매끄럽게 맞물리지 않는다. 같은 노후소득보장이라는 목적을 가진 제도들끼리 서로를 보완하기보다 서로를 밀어낸다.
제도–사회 차원. 국민연금은 장기간 보험료를 납부하고 은퇴 후 급여를 받는 표준 생애주기를 전제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장기 정규고용이 형해화되고, 경력단절·플랫폼 노동·특수고용·자영업이 확대되며, 청년층의 제도 신뢰는 낮다. 제도의 형식적 보편성과 실제 사회구조 사이의 긴장이다.
제도–역사 차원. 한국의 노후보장은 공적연금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가족부양, 퇴직금, 기업복지, 직역연금이 먼저 자리 잡았고, 국민연금은 그 위에 뒤늦게 층화(layering)된 제도다. 그래서 국민연금 개혁은 순수한 제도 설계 문제가 아니라 기존 유산과의 조정 문제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숫자만 만지는 개혁 논의가 매번 같은 벽에 부딪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부정합의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제도적 정합성이 낮을 때, 그 조정 비용은 증발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전가된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는 불안정 노동자가 진다. 선별·증빙 중심 복지의 행정부담과 낙인은 수급자가 진다. 퇴직금과 국민연금의 충돌 비용은 개혁 실패의 형태로 다음 세대가 진다. 제도 간 부정합의 비용이 국가나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와 가계로 이전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정합성 논의는 내 연구의 중심 질문과 만난다. 사회정책은 보호와 배제를 동시에 만들고, 그 경계는 대개 부정합의 비용을 누가 지는가로 그어진다.